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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2020년 10월 콜로키움 안내합니다. (10월 23일, 발표자: 김덕영)

작성자
김주환
작성일
2020.10.06
첨부파일0
조회수
59
내용

안녕하세요?

 

청명한 가을 하늘이 계속되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10월 월례 발표회에 관한 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기 위해 메일드립니다. 이번 월례발표회는 김덕영 선생님을 모시고, <베버로 보는 한국사회 분석>이라는 주제로 열리게 됩니다. 오프라인과 함께, 줌으로도 진행될 예정이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10월 월례 발표회

 

제목: 베버로 보는 한국사회 분석

           (하단에 참조할만한 발표자의 저서 소개) 


일시: 1023() 오후 6


장소: (신촌) 코지모임공간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 8-1 버티고타워 10스페이스8’

       -신촌역 3번 출구에서 우측으로 100M ‘버티고타워’ 10층 (아래 약도 참조)

        (http://www.cozymoim.com/home/info/2487)

        * 주차 가능: 버티고타워 주차장 (기본 303천원, 이후 10분당 1천원)

        * 주차장 공간이 협소하여 되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Zoom) 참여https://us02web.zoom.us/j/85971283438

              회의 ID: 859 7128 3438


발표자: 김덕영 (사회학자/작가)

토론자: 정수복 (사회학자/작가), 이황직(숙명여자대학교), 권오용(충남대학교), 왕혜숙(홍익대학교)

 

감사합니다.

 

한국문화사회학회 배상



오시는 길





한국











































 자본주의와 근대화 과정 속에 드러난 돈과 물질에 대한 무한한 욕망

30여 권이 가까이 되는 저술과 번역 작업을 통해 사회학 이론과 한국 사회의 분석에 주력해온 사회학자 김덕영 교수(독일 카셀 대학)가 ‘한국 자본주의 정신’을 파헤친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저자 김덕영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한국 자본주의에 대해 사회학적 및 계보학적 접근을 시도, 국가나 정치로부터 독립적인 시민사회에서 경제를 직업으로 하고 특정한 종교적 이념을 공유한 사회집단에 의해 담지되었던 전형적인 근대 자본주의와는 색다른 한국 자본주의를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체험, 즉 한국의 근대화 과정 전반을 일제강점기인 식민지 시대부터 지난 이명박 정부 때까지를 사회학적 분석 대상으로 삼아 한국의 근대화가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신교에 의해 시민계층적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기형적 자본주의화 과정을 밟아왔음을 밝혀내고 그것을 ‘에리식톤 콤플렉스’(에리식톤Erysichthon은 그리스 신화에 오만하고 불경스러운 부자富者로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받아 끊임없이 먹어치우는 상징으로 등장한다)라는 새로운 개념 도입으로 구체화·명료화한다. 이는 곧 돈과 물질적 재화에 대한 무한한 욕망에 다름 아니며, 이것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박정희(국가), 정주영(기업), 조용기(개신교)에 의해 형성되고 구조화된 한국적 자본주의 정신
저자는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이자 제17대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의 선거 공약(이른바 7·4·7 공약 ― 7퍼센트 경제성장률,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과 대선 홍보 영상물인 “이명박은 배고픕니다!”에 드러난 경제성장 중심의 한국 근대화 과정이 역설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짤막하게 소개하면서 그 근원이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를 통해 한국 자본주의 내지 한국 근대화 과정의 기형적 양상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총독부-지주·상인 동맹자본주의로 상징되는 ‘식민근대’ 시기를 거쳐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근대화 과정에 들어선 한국 자본주의는, 저자에 따르면,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신교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구축된 체제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이자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에리식톤 콤플렉스’는 곧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에 기반하는 환원적 근대화 과정을 통해 형성·발전하기 시작했다. 국가, 특히 박정희 정권은 가난을 극복하고 잘살아 보자는 구호 아래 개인에게 돈과 물질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자극하여 에리식톤 콤플렉스가 형성되도록 했으며, 재벌, 특히 정주영은 기업적 차원에서 에리식톤 콤플렉스를 구현했다. 그리고 한국의 개신교는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의 이데올로그이자 전도사로서 환원적 근대화의 지상목표인 경제성장을 신과 신앙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신성시해왔다. 그것은 곧 에리식톤 콤플렉스의 성화(聖化)이다. 그리고 스스로 이 환원근대적 이념을 체화하고 내면화함으로써 급속한, 아니 가히 기적이라 할 만한 교회성장을 이룩해 왔다. 결국 이명박으로 상징되고 종합된 ‘에리식톤 콤플렉스’는 박정희와 정주영 그리고 ‘조용기주의’로 대표되는 개신교가 융합된 인격체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한국만의 독특한 자본주의 정신 내지 근대화 과정은 서구의 자본주의와 달리, 자유노동의 합리적인 조직에 기반하는 시민계층적 기업자본주의가 아님은 명약관화하다. 그것은 곧 자유노동의 비합리적인 조직에 기반하는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이자 국가가 민간을 주도하고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이른바 ‘지도받는 자본주의’이다. ‘국가’가 자본주의의 형태적 또는 체계적 측면을 결정적으로 각인했는바, 종국으로는 국가가 개인을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에 필요한 정신적 태도, 즉 자본주의의 아비투스를 갖도록 초래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의 담지세력이 아닌 대다수의 한국인들도 에리식톤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이 강렬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욕망의 과실은 대부분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의 담지세력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 욕망은 끝내 충족되지 않은 채로 남아서 끊임없이 그들을 환원근대적 경제활동으로 몰아댄다. 결국 그들도 에리식톤 콤플렉스의 소유자자인 것이다.

기형적인 한국적 자본주의 정신은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개인들의 합리적인 행위를 토대로 극복해야
이러한 기형적 한국적 자본주의 정신 내지 근대화 과정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정신은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세 가지 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모든 것을 ‘경제성장’으로 환원하는 환원근대적 사고를 극복하고 환원근대의 핵심 축인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가 해체되어야 한다. 둘째, 유교에 기반하는 전통적 집단주의 정신을 근대적 개인주의 정신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는 곧 근대의 토대는 전통이 아니라 근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자본주의는 개인주의를 그 윤리적·문화적 토대로 하는 근대의 일부분, 즉 경제적 근대이다. 유교라는 전통을 계승하는 경우에도 어디까지나 근대에 의해 재해석되고 인정됨으로써 근대에 통합되어야 한다). 끝으로 개신교는 환원근대의 이데올로그 또는 전도사의 역할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그 본연의 임무, 즉 영혼의 구원에 헌신해야 하며, 그럼으로써 자본주의의 피안에서 자본주의와 일정한 긴장과 갈등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즉 개신교는 탈주술화되어야 한다(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주술사 노릇을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요컨대, 사회가 다양한 영역과 기능으로 분화됨으로써 국가가 국가답고 기업이 기업답고 교회가 교회다워야 비로소 진정한 자본주의와 진정한 자본주의 정신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 정신을 결국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개인들의 합리적인 행위유형과 생활양식으로 표출될 것이다.





환원근대 - 한국 근대화와 근대성의 사회학적 보편사를 위하여

김덕영 (지은이)

환원근대


‘이론’에 근거하지 않은 한국 근대화 담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저자 김덕영은 이 책 출간 이전까지 주로 막스 베버와 게오르그 짐멜을 비롯한 이론사회학과 고전사회학 관련 책들을 번역하거나 관련 연구서를 펴내왔다. 특히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짐멜의 『돈의 철학』 번역은 원전에 충실하고 방대한 역주와 해제를 덧붙여 사회과학 번역에 한 전범(典範)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하는 첫 번째 작업으로 그것은 바로 ‘한국의 근대화 담론’에 대한 것이다. 우리 학계에서 지금껏 논의된 근대화 담론들은 크게 내재적 발전론, 식민지 근대화론, 압축적 근대화론 등이다. 하지만 이 담론들의 결정적 문제는 바로 근대화 과정을 주로 ‘경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연스레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인식으로 이끄는데 결국 그것은 1960년대 이후 급격한 경제발전 과정을 겪은 박정희 시대와 자연스레 중첩된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모든 것을 ‘경제’ 문제로만 보는 데 익숙해져버렸다. 그래서일까. 우리 스스로 우리식의 자본주의를 ‘천박한 자본주의’라고까지 일컫고 있다. 이는 곧 우리의 근대화 과정이 오로지 경제성장에만 매달려온 결과의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김덕영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대해 새로운 개념어, 즉 ‘환원근대’로 분석·조망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과학계 전반이 ‘이론적 빈곤’에 따른 거시적 담론 제공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저자는 이론사회학과 고전사회학 그리고 현대사회학 이론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풍부하게 인용하면서 그 바탕 위에 한국 사회 분석에 접근하고 있다.

‘환원근대’라 는 개념으로 한국 근대화의 본질적 성격을 규명!
저자는 근대화 과정이라는 것이 단순히 경제성장의 문제를 넘어서는 복합적인 역사 발전과정이라는 데에서 인식의 출발점을 찾는다. 그 이론적 근거는 바로 막스 베버(Max Weber)다. 베버는 1920년에 출간된 『종교사회학 논총』 제1권에 실린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보편사의 문제들을 근대 서구 문화 세계의 후예는 불가피하게 그리고 정당하게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 아래 다루게 될 것이다. 즉 어떠한 상황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작용한 결과로 하필 서구의 터전에서 그리고 유독 여기에서만 ― 적어도 우리 서구인들이 흔히 표상하듯이― 보편적 의의와 타당성을 지니는 방향으로 발전한 문화 현상들이 출현했는가?

여기서 베버가 ‘보편사’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굳이 “보편사의 문제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베버가 보편사, 즉 인류 역사를 어떤 특정한 측면이 아니라 국가, 관료제, 봉건주의, 시민사회, 법, 자본주의, 도시, 시장, 종교, 예술, 과학(학문), 에로스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룬다는 것을 암시한다. 저자 역시 한국 근대화 문제를 ‘경제적 근대화’만의 측면이 아니라 정치적 근대화, 문화적 근대화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관점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근대성 담론이 구축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곧 경제적 근대화 담론 논의에서 이제는 ‘사회적 근대화’ 담론 논의로의 길을 제시한다.
한국 근대화의 모든 요소가 오로지 ‘경제’ 영역으로만 ‘환원’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앞서 언급했듯이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 때부터이다. 이 시기에 경제가 급격히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경제가 급격히 성장했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영역과 그 밖의 경제 내적 영역 및 경제 외적 영역이 점점 더 분리되고, 또한 전자가 점점 더 빨리 발전하면서 후자를 압도하고 이에 대하여 우월한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 경제성장이 개인들의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삶의 물적 기반이 된 것이 아니라 자기 목적이 되고 자체적인 가치가 되고 말았다. 이른바 경제성장의 물신화(物神化)가 일어난 것이다. 요컨대 환원근대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 짐멜의 표현대로 ― ‘근대의 갈등과 비극’이 연출된 것이다.
그 구체적인 추동세력은 국가와 재벌을 중심으로 한 두 주체였으며, 저자는 이를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어로 제시하고 있다. 즉 박정희 정권 시대에는 국가가 모든 것을 기획하고 그것을 재벌 중심의 대기업들이 구현해나가는 체제였다. 그 과정에서 학교교육과 가정은 그러한 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고 개인보다는 집단주의 문화가 더 중요시되었고, 인간의 영혼과 정신 순화기능을 담당해야 할 기독교 역시 그러한 환원근대의 ‘전도사’로서 역할함으로써 온 사회 모두가 오로지 ‘경제’로 환원된 체제였다.

그렇다면 진정한 근대화는? ― 사회들의 개인에서 개인들의 사회로
그렇다면 한국 사회가 환원적 근대화를 넘어 진정한 근대화의 길로 나가려면, 다시 말해 진정한 근대적 합리성을 확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저자는 우선 환원근대의 핵심 축인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물론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해체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국가와 재벌이 근대화의 ‘주연’이고 나머지는 ‘조연’이어야 한다는 관념의 폐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경제주체가 근대화의 주연이어야 함을 뜻한다. 사실상 이것이 진정한 경제적 근대화의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근대화의 측면에서 그러할 뿐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의 근대화가 요구된다. 곧 모든 사회적 제도와 조직 그리고 집단이 근대화의 주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근대화 과정에서 주연 따로 조연 따로 있어서는 안 되고 모두가 주연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사회적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적용된다. 사회분화를 하나의 핵심적 특징으로 하는 근대화는 개인화를 또 다른 하나의 핵심적 특징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근대는 사회적으로 분화된 세계일 뿐만 아니라 개인화된 세계로서, 개인의 이념과 개인주의의 원리가 적용되어야 함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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